지난 10월 13일, 한미 FTA 저지를 위한 연합 기도회가 향린교회에서 열렸습니다. 평화누리 前 공동대표이신 박득훈 목사(새맘교회 담임목사)님께서 말씀을 전해주셨는데요. 함께 나누고자 설교문을 게재합니다.
<어떤 담도 뛰어넘게 하시는 하나님>
[시편 18:28-35]
28 주께서 나의 등불을 켜심이여 여호와 내 하나님이 내 흑암을 밝히시리이다
29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군을 향해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을 뛰어넘나이다
30 하나님의 도는 완전하고 여호와의 말씀은 순수하니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모든 자의 방패시로다
31 여호와 외에 누가 하나님이며 우리 하나님 외에 누가 반석이냐
32 이 하나님이 힘으로 내게 띠 띠우시며 내 길을 완전하게 하시며
33 나의 발을 암사슴 발 같게 하시며 나를 나의 높은 곳에 세우시며
34 내 손을 가르쳐 싸우게 하시니 내 팔이 놋 활을 당기도다
35 또 주께서 주의 구원하는 방패를 내게 주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들고 주의 온유함이 나를 크게 하셨나이다.
한미FTA가 체결 된지 4년여 만에 드디어 양국 의회의 비준동의절차가 급물살을 타고 있습니다. 와서는 안 될 일이 코앞으로 다가온 것입니다. 재협상과정을 거친 한미FTA의 부당성과 불평등성은 오늘 기도회에 참여한 분이라면 익히 아는 바라고 생각합니다. 한미FTA협정이 한국경제에 미칠 영향에 대한 구체적 분석을 한미FTA저지 범국민운동본부에서 꾸준히 해 온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최근에도 「2011년 한미FTA국민보고서」를 만들어 제공한 바 있습니다. 또한 이해영 교수는 ‘한국증시, 글로벌 호구 될 날이 임박했다’는 제목으로 『프레시안』에 글을 올려 한미FTA에 반대해야만 하는 아홉 가지 이유를 일목요연하게 그리고 설득력 있게 제시하였습니다.
한미FTA의 정체
그런데 한국정부는 그 동안 한미FTA를 성사시키기 위해 총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그 이유는 두 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한미FTA를 통해 실질적으로 이익을 챙길 수 있는 그룹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바로 재벌을 비롯한 대기업들, 그리고 그들과 상생관계에 있는 정치인, 언론인, 지식인들입니다. 다른 하나는 이러한 그룹들이 얻게 되는 이익이 결국엔 국민들 전체에 긍정적 효과를 미칠 것이라는 거짓된 이데올로기입니다.
제가 제일 가슴아파하는 것은 그 동안 대다수 국민들이 이 거짓된 이데올로기에 우롱당해 왔다는 점입니다. 한미FTA로 말미암아 실질적 피해를 입게 될 이들까지 한미FTA를 마치 자신들이 살길인 것처럼 착각해왔습니다. 그리고 한미FTA를 저지해 그들의 권익을 보호하려는 이들을 오히려 한물간 좌파이념에 사로잡힌 불순분자들로 배척하곤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더 나은 자본주의를 주장하는 장하준 교수까지 나서서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를 말해준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가 명쾌하게 밝힌 것 중 하나는 ‘부자를 더 부자로 만든다고 우리 모두가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입니다.
이제 이런 깨달음이 일반 시민들에게도 서서히 확산되어 가고 있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라 할 것입니다. 그 대표적 현상이 ‘월가를 점령하라’는 시위의 지구적 확산입니다. 이 시위에 참여하는 이들이 가장 강조하는 바는 ‘우리는 99%’라는 슬로건입니다. 미국경제로 대변되는 현 자본주의가 1%의 이익만 추구하고 있는 것에 대한 항의입니다. 최근 한국을 방문한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은 월가점거시위에 대하여 시의적절한 평가를 했습니다. ‘월가 점거 시위는 명백히 정의와 공정과 관련된 문제’이며 미국금융위기와 그에 대한 정부의 대처가 공정하지 못한 이유는 ‘이익의 사유화’와 ‘손실의 사회화’라고 명확히 꼬집어 말했습니다. 저는 한미FTA의 핵심을 한 마디로 말하라고 한다면 바로 이렇게 불공정한 미국의 정치경제체제를 한국에 직수입해 한국을 미국에 편입·종속시키는 것이라고 대답하겠습니다.
그리스도인이 한미FTA에 저항해야할 이유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러한 한미FTA를 적극 저지해야 하는 이유는 너무 명백합니다. 한미FTA를 강력하게 부추기는 것은 자본주의이고 자본주의 배후에는 맘몬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맘몬은 자본의 강력한 힘을 빌려 실질적으로 하나님 행세를 하며 수많은 사람을 유혹하는 영적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맘몬이 지배하는 자본주의 체제는 테리 이글턴이 『신을 옹호하다』에서 잘 밝힌 것처럼 그 본질에서 무신론적입니다. 게다가 그 무신론은 아주 저질적입니다. 자본주의 세상에선 일정한 수준 이상의 도덕적 논의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최근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열린 확대비서관회의석상에서 현 정권이야말로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라고 스스로 주장한 바 있습니다. 이로써 그 자신과 현 정권의 도덕적 수준이 얼마나 저급한가를 드러냈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하나님을 진정으로 논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한미FTA가 실시되지 않은 상황에서조차도 성경에 나타나 있는 하나님을 있는 그대로 교회에서 이야기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가난한 자를 억압에서 해방시키시는 하나님을 전했다간 철지난 계급투쟁론자로 의심받기 일쑤입니다. 그러니 한미FTA가 본격적으로 실시되어 자본주의가 더 심화된다면 어떻게 진정한 하나님을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까? 이름과 껍데기만 남을 뿐 진정한 하나님의 실체는 교회에서 사라질 것입니다. 기껏해야 하나님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공을 거둔 사람을 따라다니며 축복해주는 존재로, 아니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실패한 사람들을 임시방편으로 위로해주는 일종의 마약으로 전락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마치 일제 강점기 때 신사참배를 목숨 걸고 반대했듯이 한미FTA에 결연히 맞서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한미FTA에 강력하게 저항해야 할 또 하나의 이유는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누가 뭐래도 언제나 사회적 약자 편에 서 계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지난 용사 참사 때 젊은 작가들이 발표한 선언문의 한 구절을 저는 영원히 잊을 수 없습니다. ‘문학은 한 사회의 예민한 살갗이어서 가장 먼저 상처입고 가장 빨리 아파한다.’ 저는 우리의 하나님이 바로 그런 분이시라고 굳게 믿습니다. 하나님이 이 땅에 이루시고자 하는 정의의 핵심은 사회적 약자들의 눈물을 닦아주시고 그들의 존엄성과 권리를 회복시켜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 뜻을 실천할 의지가 있어야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실천한다는 것은 곧 한미FTA를 관철시키기 위해 똘똘 뭉쳐있는 지배세력에 대한 강력한 저항을 의미합니다. 저는 최근 고 함석헌 선생님의 글을 읽으면서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무저항주의라고 아는 체 그런 소리를 하지마라. 그것은 사실은 저항의 보다 높은 한 방법일 뿐이다. 바로 말한다면 비폭력저항이다. 악을 대적하지 말라 한 예수가 그렇게 맹렬히 악과 싸운 것을 보아라. 말은 들을 줄 알아야 한다.
하늘에 올라가도 저항, 땅에 내려와도 저항, 물속에 들어가도 저항, 허무 속에 가도 거기서 스스로 일으키는 회오리바람 속에 버티고 있는 하나님이 있는데 너만이 저항을 모른단 말이냐? “사탄아 물러가라!”하고 내가 너를 박차 너를 살려내고 말리라. [김진 엮음, 『너 자신을 혁명하라: 함석헌 명상집』 (오늘의 책, 2003), 156-157 쪽]
지금 우리는 다시 한 번 저항의 영성을 불러 일으켜 뜨겁게 발휘해야 할 때입니다.
한미FTA에 저항 할 수 있는 힘
그런데 문제는 한미FTA를 추진하는 세력이 너무나 막강하게 보인다는데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여러 번 좌절한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패배주의가 우리 존재 깊은 곳에 스며들어 와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싸워야 할 더 무서운 적은 우리 안에 잠재해 있는 좌절과 패배주의인지도 모릅니다. 저는 그래서 오늘 시편 18:28-35절의 말씀을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시인은 지금 막강한 적과 대치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도저히 인간적인 계산으론 그들을 이길 전력을 갖고 있지 못합니다. 그가 들고 있는 등불은 빛을 잃고 꺼져가고 있었습니다. 그의 주변은 더욱 캄캄해져 가고 있었습니다. 도무지 전망이 보이질 않았습니다. 바로 이 때 그는 구원을 경험합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등불을 다시 밝혀주십니다. 그의 주변을 덮었던 어둠을 물리쳐 주십니다(28).
하여 그는 다시 용기와 전의를 회복합니다.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군을 향해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을 뛰어넘나이다(29).’ 그가 어떻게 이렇게 힘을 낼 수 있었을까요? 그는 자신이 의뢰하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새롭게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도는 완전하고 여호와의 말씀은 순수하니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모든 자의 방패시로다(30).’ 그는 그 동안 하나님께서 인간의 역사 속에서 걸어오신 길이 얼마나 완벽한가를 깨달았습니다. 또한 그 길을 가시며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어떤 흠결도 없는 순수함 그 자체임을 확인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신 바를 그대로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이를 통해 시인이 얻은 결론은 명백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완벽한 길에 동참하기 위해 자신을 의지하는 자들에게 방패가 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그는 두려울 것이 없는 것입니다.
게다가 그가 의지하는 하나님은 보통분이 아니십니다. ‘여호와 외에 누가 하나님이며 우리 하나님 외에 누가 반석이냐(31).’ 물론 그는 그 동안 세상에서 하나님 노릇하는 것들과 대면해야만 했을 것입니다. 거기엔 경제력, 군사력, 외교력, 그리고 이 힘들을 정당화해주는 이방신 등이 포함되었을 것입니다. 사실 이들이 갖고 있는 실질적 힘은 막강합니다. 오늘 우리 시대에도 늘 목도하고 있지 않습니까? 월가를 지배하고 있는 금융자본의 권력을 상상해보십시오. 그렇게 심각한 위기를 초래한 장본인이면서도 오히려 국민의 세금으로 다시 살아나고 엄청난 이익을 챙기지 않았습니까? 미국은 2000년대에 불의한 전쟁을 두 번이나 중동에서 일으켰지만 아무런 사과도 하지 않고 여전히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은 돈과 무기가 지배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다양한 이데올로기들이 정당화해줍니다. 하지만 시인은 예리한 눈으로 그 허상을 봅니다. 그건 결코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는 사물을 오늘의 현실이라는 근시안적 안목으로 본 것이 아니라 긴 역사의 안목으로 그리고 영원의 안목으로 오늘의 현실을 들여다보고 그 정체를 파악했습니다. 그럴 때, 그는 발견했습니다. 돈과 무기는 결코 하나님이 될 수 없다는 진실을 말입니다. 오직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해방시키시고 이스라엘을 통해 온 세상을 죄와 어둠의 권세에서 해방시키고 계시는 여호와만이 진정한 하나님이심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을 실제로 지배하는 세력은 돈과 무기를 손아귀에 쥔 강한 자들이 아니라 여호와께 피한 약한 자들임을 깨달았습니다.
다시 고 함석헌 선생님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나만 아니라 남을 아는, 이제만 아니라 영원을 바라는 마음으로 보면 역사는 결코 사납고 강한 자의 것이 아니고 착하고 부드러운 자의 것임을 알 수 있다. [김진 엮음, 상게서, 15 쪽]
이를 확신한 시인은 벅찬 가슴으로 고백합니다. 그 고백은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이 진정으로 우리를 굳게 받쳐주시는 반석이십니다. 이 하나님은 우리를 굳세게 하십니다. 하나님나라의 용사로 우리를 세워주십니다. 힘을 불어넣어주시며 우리의 가는 길이 온전하도록 지켜주십니다(32). 우리 발을 암사슴 발처럼 빠르게 하시고 높은 곳에 안전하게 세워주십니다(33). 심지어 싸우는 법까지 가르쳐 주십니다. 하여 우리의 팔로 놋쇠로 된 강한 활을 당기게 해 주십니다(34). 우리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방패를 우리의 손에 들려주시고, 주님 자신이 오른 손으로 우리를 강하게 붙들어 주십니다. 주님께서 이토록 우리를 보살펴 주시어 우리를 위대하게 만들어 주십니다(35).
맺음말
그렇습니다. 사회적 약자 편에 서서 하나님과 함께 길을 걸어가는 자에게 승리가 약속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결코 빈말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역사를 통해서 수많은 증거들을 이미 보여주셨습니다. 가장 확고한 증거는 예수님의 부활의 사건입니다. 물론 예수님의 부활은 왜곡된 승리주의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당장의 승리를 언제나 보장해주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도 스데반은 돌에 맞아 순교했고 야고보는 칼로 순교 당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말씀해주시는 바는 약자 편에 서서 하나님과 함께 걸어가다 죽음을 당한다 해도 그것이 실패가 아니라 승리라는 놀라운 진리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목마르다’며 괴로워하셨습니다. 심지어는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며 절규하셨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숨을 거두시기 직전 예수님은 놀랍게도 ‘다 이루었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그 승리의 선언이 결코 허풍이나 망상이 아니라 진실임을 증명해줍니다. 예수님은 깊고 깊은 희생의 사랑으로 악과 싸워 이기시는 분임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마침내 때가 오면 그 승리가 궁극적으로 실현될 것을 확증합니다.
우리는 한미FTA가 철회되길 간절히 바라는 열망으로 저항의 깃발을 올립니다. 우리는 그 결과를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설사 우리의 저항이 무의로 돌아간다 해도 낙심할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선언하신 예수님의 승리에 동참하는 놀라운 영광을 누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스데반이 바로 그런 경험을 했습니다. 순교하기 직전 그는 하늘을 우러러 보았습니다. 그 순간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고 하나님 우편에 서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았습니다. 그는 죽음 직전 승리를 경험했습니다. 이런 승리를 경험한 사람에게 궁극적 승리는 반드시 주어질 것입니다. 죽음 속에서 오히려 승리를 경험하는 사람을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스데반 같은 사람을 통해 하나님나라의 진리는 오늘 우리에게까지 이어져 온 것 아닙니까?
사랑하는 신앙의 동지 여러분, 이러한 승리의 확신을 뜨거운 가슴에 품고 철옹성처럼 우리 앞에 굳게 서 있는 한미FTA라는 담을 힘차게 뛰어 넘어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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