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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누리 이야기/평화누리 News

비전 메시지 - 오병이어를 드리는 마음으로...(박득훈 공동대표)

이 글은 2012년 3월 3일에 진행된 "2012년 평화누리 회원총회"에서 나눈 비전 메시지의 내용입니다.
총회에 참석하지 못한 분들을 위해 공유해 드립니다.^^



오병이어를 드리는 마음으로

박득훈 공동대표

[요 6:1~11]

오랜만에 평화누리 동역자들을 만나게 되어 감사합니다. 오늘 총회를 통해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다질 수 있게 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통해 오병이어를 드리는 마음으로 평화누리 운동에 임하자는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1. 예수님은 무리들의 기본적 필요를 채워주시고자 하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은 육체의 건강과 먹거리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계십니다. 대중들이 예수님께 매료된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예수님께서 놀라운 능력으로 그들의 불치병을 고쳐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가시는 곳마다 따라 다녔습니다. 이렇게 대중들이 자기에게 몰려 올 때 그들을 바라보시며 빌립에게 물으셨습니다.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이는 그들의 경제적 필요를 채워주시는데 예수님의 관심이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이는 바로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창세기의 창조기사를 보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고 복주시고 사명을 부여하신 다음, 제일 먼저 그들의 먹거리를 보장해주십니다.

창 1:29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온 땅 위에 있는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있는 열매를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준다. 이것들이 너희의 먹거리가 될 것이다.

바로 이어서 땅의 모든 짐승과 기어 다니는 것들 그리고 하늘의 새에게도 먹거리를 약속하십니다(창 1:30).

그러므로 예수님과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사는 사람이라면 모든 사람들 심지어는 짐승들과 땅에서 기어 다니는 미물들 그리고 하늘의 새들의 먹거리에까지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시고 보장해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먹거리가 부족하다면 이것은 분명히 사회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세상에 먹거리를 찾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부족합니까? 누군가 자신의 경제적 유익을 위해 거머쥐고 있기 때문이죠.

김구선생의 ‘나의 소원’이라는 유명한 글의 한 대목이 생각납니다.

지금 인류에게 부족한 것은 무력도 아니오, 경제력도 아니다. … 인류가 현재에 불행한 근본 이유는 인의(仁義)가 부족하고, 자비가 부족하고, 사랑이 부족한 때문이다. 이 마음만 발달이 되면 현재의 물질력으로 20억이 다 편안히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유대사회에는 원칙적으로 돈이 없어서 배를 굶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되는 사회입니다. 하나님은 다양한 율법에 조치를 취해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적지 않은 사람들이 경제적 빈곤에 시달려 먹거리를 스스로 챙기기 어려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상황을 직시하고 제자들로 하여금 깊은 문제의식을 갖게 하십니다.

예수님을 영혼의 치유자로만 생각하기 쉽습니다. 먹고 사는 문제는 한 차원 아래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얼마나 잘못되고 무서운 것인지 모릅니다. 삶의 다른 중요한 분야 즉 신앙, 예술, 정치, 법 그리고 문화 영역에서 진실을 왜곡하고 호도하는 결과를 낳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언제라도 놓치지 말아야 할 진실은 인간은 그 누구도 일차적으로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존재조차 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인간은 그렇게 창조되었습니다. 먹지 않고는 살 수가 없고 제대로 생각할 수조차 없습니다. 물론 금식하면서 먹고사는 문제를 초월할 수 있습니다. 더 깊은 영적 경험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잠시 가능할 뿐입니다. 예수님께서 마귀에게 시험받으시면서 하나님말씀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은 경제적 능력을 우상화하는 맘몬주의를 거부한 것이지, 경제적 필요 자체를 폄하한 것이 결코 아닙니다(마 4:1-4).

이런 진실을 간과하고 먹고사는 문제를 등한시 하면 역설적 결과를 낳게 됩니다. 먹고 사는 문제가 도리어 인간의 모든 생각과 삶을 아주 은밀하게 지배하게 됩니다. 먹고 사는 삶의 불평등 즉 경제적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온갖 논리를 만들어 냅니다. 성경에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비판이 그렇게 많건만 대다수의 신앙인들이 전혀 듣지 못합니다. 왜 그럴까요? 사실은 먹고 사는 문제에 집착해 있으면서 아닌 것처럼 스스로를 속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할라치면 이미 부자인 사람은 자기가 손해를 봐야 할 것 같은 두려움에 직면합니다. 아직 가나난 사람은 부자 되고 싶은 욕망을 버려야할 것 같은 불안함을 느낍니다. 그래서 먹고사는 문제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아예 외면하거나 영적으로 해석해버립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경제적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왜곡된 신학을 만들어 내고 신봉합니다.

이 점을 사회과학적으로 명확하게 밝혀낸 사람이 슬프게도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마르크스이죠. 그의 장례식에서 그의 절친이자 동료였던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이렇게 말하죠.

다윈이 유기체의 발전법칙을 밝힌 것과 꼭 마찬가지로 마르크스는 인류 역사의 발전법칙을 밝혀냈습니다. 지금까지 너무 많은 이데올로기에 가려져 있던 간단한 사실, 즉 인류는 우선 먹을 것, 입을 것, 쉴 곳을 마련한 후에야, 즉 당장에 필요한 물질적 수단을 생산한 후에야, 정치·과학·예술·종교 등을 고민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따라서 특정한 시대의 특정한 사람들이 이룩한 경제적 발달 정도가 토대를 형성했고, 이 토대 위에서 국가기구, 법 개념, 예술 심지어 종교관 등 사람들과 관련된 모든 것이 진화된 것입니다.

물론 저는 마르크스의 유물론적 역사관을 절대화 하진 않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인간은 40일까지도 금식할 수 있는 것처럼 특별한 순간에 육체적 욕망보다 정신적·종교적 열정을 앞세울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때로 자신의 경제적·사회적 지위를 초월해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마르크스의 이 명제가 오늘 한국사회와 교회에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고 생각합니다. 경제적불평등 문제에 오늘 대다수 기독교회가 무관심한 것은, 경제적 불평등을 필연적으로 만들어내는 경제구조라는 토대위에 교회가 세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그런 토대에서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합니다. 목회자와 신학자는 그들이 내는 헌금, 등록금 그리고 후원금 등으로 먹고 삽니다.

그러므로 이런 역설적 상황에서 벗어나려면 먹고사는 문제를 신앙의 중요한 관심사로 삼아야 합니다. 그래야 그 기초위에 바른 신앙을 세워갈 수 있습니다. 한국경제는 규모로 보아 지난 40여 년 동안 엄청난 성장을 해 왔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 양극화가 심화되어 왔고, 경쟁만능, 승자독식이라는 문화 속에서 경제정의에 대한 감각이 무뎌져 왔습니다. 먹고사는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것은 그 당사자의 문제일 뿐이라고 여깁니다.

평화누리는 이런 한국사회의 근본문제에 주목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평화를 만들기 위해 오셨고 평화의 기본조건은 정의실현입니다. 그리고 정의의 핵심 중 하나는 모든 사람이 먹고살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용산참사가 일어난 것은 충분한 경제력 없는 사람들의 먹고사는 문제를 자본과 국가 그리고 사회가 외면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올 해 평화누리가 철거민 문제에 집중하기로 한 것은 매우 뜻 깊은 결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이 문제에 집중할 수 있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2. 오병이어를 드리면 나머지는 예수님이 책임지십니다.

예수님의 질문을 받고 빌립은 너무나 당황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답합니다. ‘이 사람들에게 모두 조금씩이라도 먹게 하려면, 빵 이백 데나리온 어치를 가지고서도 충분하지 못합니다.’ 그는 돈이 없어서 무리들의 먹거리를 책임질 수 없다고 답했습니다. 매우 합리적인 답변입니다. 예수님이 그런 상황을 모를 리 없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예수님은 빌립에게 그런 엄청난 질문을 던지신 것일까요? 그에게서 어떻게 해서든지 무리를 먹이고자 하는 마음, 자기에게 있는 것으로 최선을 다하는 자세 그리고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보기 원하셨던 것입니다. 빌립은 불합격이었습니다.

이때 안드레가 등장합니다. 빌립과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좀 다릅니다. ‘여기에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는 한 아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많은 사람에게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 역시 오병이어는 무리를 먹이기에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가 예수님의 마음에 공감했다는 점입니다. 그 역시 어떻게 해서든지 무리를 먹여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여 최선을 다했습니다. 찾아낸 것이라곤 어린아이가 갖고 있었던 오병이어뿐이었습니다. 정말 보잘 것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걸 들고 예수님께 나와 왔습니다. 민망하기 그지없지만 나머지는 예수님께서 알아서 해결해주실 것을 기대한 것입니다.

저는 오늘 예수님께서 평화누리 동지들에게 기대하는 바가 바로 안드레의 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합리적 사고란 일상적인 삶을 살아가는데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의 마음을 읽고 주님을 따라가려면 합리적 사고의 한계를 벗어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선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임무를 수행할 수 없습니다. 평화누리가 해야 할 일은 정말 엄청난 일입니다. 한 마디로 거대한 자본주의와 맞서 하나님나라의 정의와 평화를 실현해가는 것입니다.

자본주의 세력은 얼마나 거대합니까? 그들 스스로 인정하고 자랑하는 대로 일단 돈이 많습니다. 그 돈으로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지식인 그룹을 끊임없이 만들어내 대학교와 싱크탱크 집단을 장악할 수 있습니다. MB정권하에서 목도한 것처럼 주요언론을 장악할 수 있습니다. 마르크스가 잘 파악했듯이 국회와 청와대를 자본을 위한 운영위원회 정도로 전락시킬 수 있습니다. 오죽하면 노동자를 위한 변호사로 활약했던 그리고 서민들의 사랑을 받았던 고 노무현 대통령이 임기 중 권력이 시장에 넘어갔다고 공적으로 고백했겠습니까?

하나님나라 편엔 모든 것이 부족합니다. 우선 결정적으로 돈이 없습니다. 평화누리 풀타임 간사 한 사람 책임지기 어려운 형편입니다. 그러니 자본주의와 맞서 싸울 수 있는 다양한 자원을 마련하기가 심히 어렵습니다. 정보력이 형편없이 모자랍니다. 자본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수많은 인력을 풀어서 수시로 여론을 조사하고 연구하여 그럴듯한 자료를 만들어냅니다. 사실을 왜곡시킨 것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에게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하나님나라 운동 그룹은 거기에 대항하여 탄탄한 자료들을 만들어낼 여력이 없습니다. 모든 개혁진영을 보십시오. 대다수가 얼마나 힘겹게 살림을 꾸려가고 있습니까? 정말 우리는 빌립의 심정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가난한 우리들에게 어찌 그렇게 엄청난 과제를 맡기십니까?

그러나 기억합시다. 우리에게 정말 부족한 것은 200데나리온이라는 돈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가슴 안에 예수님의 마음이 정말 불타고 있느냐 입니다. 우리의 감당할 수 있는 몫을 감당하면 나머지는 아무리 어려운 것이라도 예수님께서 책임져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느냐, 입니다.

제가 나이가 들어가면서 정말 좋아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는,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는 사람에게 베드로가 준 말씀입니다.

[행 3:6-7] ‘6 … 은과 금은 내게 없으나, 내게 있는 것을 그대에게 주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시오" 하고 7 그의 오른손을 잡아 일으켰다.…’

베드로는 은과 금은 없었으나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갖고 있었습니다. 즉 그의 인격과 능력을 알고 있었고, 그를 마음 깊은 곳에 품고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가 아니라 전인격적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 믿음과 앎이 그의 말과 손에 실렸습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시오’ 라고 말하면서 그의 손을 잡아 일으키자 그 사람의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었습니다. 그는 그 자리에서 뛰어 섰습니다.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면서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하나님나라 운동은 돈의 힘으로가 아니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추동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름이 작동하는 구체적 표현방식은 다르겠지만 이 원칙은 여전히 유효한 것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이름입니다. 예수님을 이름으로 아는 것 즉 예수님의 인격과 능력을 확실하게 믿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그런 믿음이 있다면 우리의 말과 손에 능력이 생길 것입니다. 우리의 말로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키며 우리의 손으로 그들의 손을 잡고 일으켜 세울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있다면 돈이 없어도 우리는 하나님나라의 일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백데나리온 보다 예수님의 이름을 찾을 수 있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이름만 우리에게 있다면 우리가 가진 것이라곤 입과 손 밖에 없어도 우리는 하나님나라의 일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오늘 그런 깨달음으로 우리가 갖고 있는 작은 오병이어를 드리는 심정으로 평화누리 운동을 새롭게 출발할 수 있게 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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